♧은솔 자작시♧

충 정 로

이카루스。 2023. 10. 7. 12:01


충 정 로 -은솔 문 현우- 바람부는 날이면 영화 속 주인공같은 옷차림으로 충정로에 가고싶다 신촌을 지나 굴레방다리를 거쳐 아현동에 다다르면 내 어릴 적 기억이 거덜창난 문방구 문 틈으로 이빠진 웃음 지으며 내밀던 노파의 주그레한 손길같이 까닭없이 번져오는 시간의 궤적들을 좇게 만든다. 일전에 비지와 메밀묵,생선 파는 아줌마들의 억센 사투리 섞인 시끌벅적함 위로 녹슨 기관차가 바앙대던 철길은 여전히 양방향의 그리움으로 달리고 빈 공간을 메워버린 숱한 가옥들과 철길 건너편에 켜지던 불빛. 공사장의 철근에 어둠이 물들고 돌아가야할 저녁이 허기진 일상을 재촉할 때 누이의 손목 잡고 돌아서던 날 그 자리는 공터였었다 흙먼지 바람이 부는 북아현동, 약수터 가는 길 따라 오가는 이의 얼굴은 예전과 다르고 유년 시절의 자화상이 아스콘 포장 위로 몇 겹이 덮혀버린 오르막을 벗어나서 내 살던 충정로로 가는 길. 밤새 피어난 분꽃과 나팔꽃을 헤아리며 부지런 떨던 꽃밭 가장자리의 맨드라미와 해바라기에 어리던 조그만 얼굴이랑, 시큰둥해진 표정으로 문지방에 걸터앉아 툴툴대던 할미의 곰방대에서 토해내는 폐부 깊숙한 담배연기, 전설 속의 구렁이 잡는다던 니코틴이 찌들었을 사위어가는 지붕 이음매 사이로 백골의 기억같은 노을이 걸리고 뒷뜰 담쟁이 넝쿨 사이로 남아 있던 아버지의 기침 소리 바뀌어진 문패 곁에서 이름모를 향내가 코 끝을 스친다 충정로의 먼지 담은 바람이 고갯마루를 지나 아현동으로 불어오면 낯선 동네가 되어버린 길에도 어릴 적 할미같이 등굽은 지팡이 느린 걸음을 옮기고 물씬 풍기는 추억 내음이 두터운 옷깃 사이 바람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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