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약(貧弱)한 올페의 회상(回想) /최 하 림
나무들이 일전(日前)의 폭풍처럼 흔들리고 있다
먼 들을 횡단하여 나의 정신(精神)은 부재(不在)의 손을 버리고
쌓여진 날이 비애처럼 젖어드는 쓰디쓴 이해(理解)의 속
퇴각하는 계단의 광선이 거울을 통과하며 시간을 부르며
바다의 각선(脚線) 아래로 빠져나가는
오늘도 외로운 발단(發端)인 우리
아아 무슨 근거(根據)로 물결을 출렁이며 아주 끝나거나 싸늘한 바다로
나아가고자 했을까 나아가고자 했을까
기계(機械)가 의식의 잠속을 우는 허다한 허다한 항구(港口)여
내부(內部)에 쌓인 슬픔을 수없이 작별하며 흘러가는 나여
이 운무(雲霧) 속, 찢겨진 시신(屍身)들이 걸린 침묵 아래서 나뭇잎처럼
토해 놓은 우리들은 오랜 붕괴의 부두를 내려가고
저 시간들, 배신들, 나무와 같이 심은 별
우리들의 소유인 이와 같은 것들이 육체(肉體)의 격렬한 통로(通路)를 지나서
불명(不明)의 아래아래로 퍼져 버리고
울부짖음처럼 눈발이 날리는 벌판의
차가운 가지 새에서
헤매임의 어휘에 걸려 나나히
무거운 팔을 흔들고
나의 가을을 잠재우라 흔적의 호수(湖水)여
지금은 물속의 봄, 가라앉은 고향의
말라들어가는 응시에서 핀
보라빛 꽃을 본다
나무가 물속처럼 커오르고
푸르디푸른 벽에 감금한 꽃잎은 져내려
분홍빛 몸을 감싸고
직모물의 무늬같이 부동(不動)으로 흐르는
기나긴 철주(鐵柱)를 빠져나와 우리들은 모두 떠오른다
여인숙(旅人宿)에서처럼 낯설게 임종한, 그 다음에 물이 흐르는 육체(肉體)여
아득히 다가와 주고 받으며 멀어져가는 비극의 시간은
서산(西山)에 희고 긴 비단을 입고 오고 있다
아주 장대하고 단순한 바다 위애서
아아 유리디체여!
(유리디체여 달빛이 흐르는 철판 위
인간(人間)의 땀이 어룽져 있는 건물 밖에는
달이 떠 있고 달빛이 기어들어와
파도소리를 내는 철판 위
빛낡은 감탄사를 손에 들고 어두운
얼굴의 목이 달을 보면서 서 있다)
□
푸르디푸른 현(絃)을 율법(律法)의 칼날 위에 세우라
소리들이 떨어지면서 빠져나가는 매혹하는 음절로 칠지라도
너는 멀리 고향(故鄕)을 떠나서 긴 팔굽만을 슬퍼하라
들어가라 들어가라 계량하지 못하는 조직 속
밑푸른 심연 끝에 사건이 매달리고
붉은 황혼이 다가오면 우리들의 결구(結句)도 내려지리라
□
아무런 이유도 놓여 있지 않은 공허(空虛) 속으로
어느 날 아이들이 쌓아올린 언어
휘엉휘엉한 철교에서는 달빛이 상처를 만들며 쏟아지고
때없이 달빛이 걸린 거기
나는 내 정체(正體)의 지혜(知慧)를 흔든다.
들어가라 들어가라 하체(下體)를 나부끼며
해안(海岸)의 아이들이 무심히 선 바닷속으로
막막한 강안(江岸)을 흘러와 쌓인 사아(死兒)의 장소(場所). 몇 겹의 죽음.
장마철마다 떠내려온, 노래를 잃어버린 신(神)들의 항구(港口)를 지나서.
유리를 통과한 투명한 표류물(漂流物) 앞에서 교미기(交尾期)의 어류(魚類)들이 듣는 파도소리
익사한 아이들의 꿈
기계가 창으로 모든 노래를 유괴해간 지금은 무엇이 남아 눈을 뜰까
……하체(下體)를 나부끼며 해안(海岸)의 아이들이 무심히 선 바다 속에서.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
<은솔의 감상 및 분석>
나무들이 해 뜨기전 폭풍처럼 흔들리고 있다 / 먼 들을 횡단한 정신은 부재의 손을 버리고..
쌓여진 날들의 비애,그 쓰디쓴 이해 속 퇴각하는 계단의 광선이 거울을 통과하며 시간을 부르며-돌아눕는 지난 날..
힘든 생의 아르고호의 원정,그 외로움.. '무슨 근거로~했을까/ 삶의 바다의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원정이겠죠
기계가 의식의 잠 속을 우는 허다한 항구-문명에 함몰된 인간정신의 숱한 단상들 아닐가요?./내부에 쌓인 슬픔과
작별하며 흘러가는 나..그 운무 속,찢겨진 시신들이 걸린 침묵 아래-갈갈이 찢겨 강물에 던져진 올페의 시신-어쩌면
우리네 지내온 삶의 처절한 단편조각들,그 침묵..
오랜 붕괴의 부두를 내려가고 저 시간들,배신들은 육체의 통로를 지나 不明이 아래로 추락하고-어둠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군상들../
울부짖음처럼 눈발이 날리는 외로운 벌판에 서있네요./내 가을을 잠재우라 흔적의 호수여.지금은 물 속의 봄.나무가 물 속처럼 커오르고
우리들도 떠오른다./ 낯설게 임종한 물흐르는 육체여.아아 유리디체(에우리디케)여/푸르른 하프의 현을 율법의 칼날 위에 세우라/이유없는
공허속,아이들이 쌓아올린 언어-상처입은 달빛이 걸린 거기/ 내 정체(Identity)의 지혜를 흔든다..
소리들이 떨어지면서 빠져나가는 매혹하는 음절로 칠지라도 너는 멀리 고향(故鄕)을 떠나서 긴 팔굽만을 슬퍼하라/ 들어가라 들어가라 계량하지 못하는 조직 속 밑푸른 심연 끝에 사건이 매달리고 / 붉은 황혼이 다가오면 우리들의 결구(結句)도 내려지리라
..원죄로 낙원에서 추방되어 고향을 떠난 슬픔,계량하지 못하는 조직 속 밑푸른 심연은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본연의 고향이겠지요.황혼이
다가오면 결구는 어떻게 내려질런지?,,아마도 찢겨진 육신과 영을 붙잡고 서있어야만하는 우리네의 고된 삶의 현실만이겠지요.
하체를 나부끼며 해안의 아이들이 선 바다속으로 올페여,들어가라..死兒의 장소,몇겹의 죽음.神의 항구를 떠난 익사한 아이들의 꿈-神에게서 멀어진 아이들이 익사한,기독교에 의하면 인간의 원죄로 인하여 타락하고 낙원에서 추방되어 고된 삶을 살아야하는 숙명적 삶-그것을 작가는 휴머니즘적 관점에서 침묵으로 항거하는 것 같습니다.작품 전체에 흐르고있는 기조는 허무적이고 담담하게 헤밍웨이적인 hard-boiled적 문체입니다.-그로 인한 어릴적 품었던 꿈의 좌절이겠죠..
아무런 이유도 놓여 있지 않은 공허(空虛) 속으로
어느 날 아이들이 쌓아올린 언어 휘엉휘엉한 철교에서는 달빛이 상처를 만들며 쏟아지고
때없이 달빛이 걸린 거기 나는 내 정체(正體)의 지혜(知慧)를 흔든다.
기계가 모든 노래를 유괴해간 지금,무엇이 남아있을까../ 공허함 속에 달빛에 투영되는 상흔에서 내 정체-identity-Sein(존재)의 지혜는
흔들린다..
사아(死兒)의 장소(場所). 몇 겹의 죽음.
장마철마다 떠내려온, 노래를 잃어버린 신(神)들의 항구(港口)를 지나서/ 죽은 아이들의 장소,몇 겹의 죽음,노래를 잃어버린 神이란 인간이
울부짖어도 결코 답하지 않는 신의 비정함은 아닐까요?..
하체(下體)를 나부끼며 해안(海岸)의 아이들이 무심히 선 바다 속에서../ 하여 기계문명으로 인하여 순수한 아이들의 노래는 유괴되어 버렸고 찢겨진 육신,하체를 나부끼며 아이들이 무심히 서있는 바다는 우리인간이 살고있는 지구,현재의 이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후유~힘들다~ㅋ 대충 해설을 해봤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난해하나 신화에 맞춰보면
좌절된 삶에 대하여 회상하며 현실의 모습을 그리고 있네요.난해하지만 참 잘쓴 작품입니다^^
기계문명에 의해 좌절되어버린 유년의 꿈-현대인의 희망-을 오르페우스의 신화를 통해 그리고있죠.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영혼이 불사와
영원의 행복을 얻는다는 교리..유리디체를 하데스에서 데려오려던 것이 뒤를 돌아봐서 좌절되고 영계로 돌아간 그녀-우리 삶을 상징적으로
그리고있죠
기계가 창으로 모든 노래를 유괴해간 지금은 무엇이 남아 눈을 뜰까/..올페의 하프연주가 안들리고 익사한 아이들의 꿈, 하체(下體)를 나부끼며 해안(海岸)의 아이들이 무심히 선 바다는 결국 희망이 사라지고 좌절된 현대인이 서있는-작가의 마음의 상태가 갈기갈기 찢기운 올페의 육신과도 같다는걸-보여주는 듯합니다
올페의 시체가 산산조각이 난것은 좌절된 꿈의 편린들을 상징하죠..이런 난해한 신화를 인용해 쓴 작품도 감상해보는 것-신화적 접근방식이라 하죠-을 통하여 우리의 시 감상 분석과 창작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을 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