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솔 자작시♧ 1575

그 해 겨울

『 그 해 겨울 』 -은솔 문 현우- 눈 녹아 질척거리는 풍경은 더럽고 쓸쓸하다 바깥은 어둡고 암담한 시간이 와있고 잊혀진 사람들 지나간 것들의 윤곽만 두런두런 묻어온다 머뭇거리지 않는 지축의 회전 유리창엔 김이 서리고 주전자의 물이 딸그락거리며 뚜껑을 여닫을 때 그래,오지 않을 것이다 가슴 뜨겁던 날에 부르던 노래 흔적 따라 한 해의 겨울도 시간의 굴레에 묻혀갈 것이다.

시간의 강

『 시간의 강 』 -은솔 문 현우- 한겨울 바람이 마른 가지들을 부러뜨리고 뜨락을 서성이던 시간은 사라져 그림자마저 보이지 않는다 발 아래 누운 풀들의 입술은 시퍼렇게 바들바들 떨고 있다 이제 흘러온 시간의 강 하구에서 지나간 날들은 모두 모닥불에 모여드는 벌레처럼 태워버리자 과거는 항시 그리움으로 남는 것, 미련으로 이어져 뇌수에 뿌리를 내려도 이제 그만 안스러워하자 삶은 신파극 무대는 항시 바뀌고 막(幕)과 장(章)은 달라진다 그래도 남은 기억일랑 형상화(形象化) 할 수 밖에, 세월의 강물 흐르는 언저리에서 미래를 기림해야 하리라.

나무의 독백

『 나무의 독백 』/은솔 문 현우 』 밤마다 꿈을 꾸곤 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바람 별빛이 가지에 부딪치는 소리, 허공을 스치는 음성들과의 교감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것을 자신의 내부에 수용할 수 있는 공백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혼의 기갈과 그 비워진 공간에서 대상을 찾고 비어있음을 보여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교감한다는 것과 상응한다는 것. 차가운 밤 촉촉히 내리는 이슬 속에 다시 꿈을 꾼다.

12월의 연가

『 12월의 연가 』/은솔 문 현우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볼을 스친다 헐벗고 선 나목들 오늘따라 그대가 이렇게 생각남은 어인 연유인가 창 밖 회빛 하늘을 이고 저멀리 아스라히 떠오르는 당신의 얼굴 보고픈 사람의 온기가 스며있을 것같은 사진 속의 미소짓는 모습 부서져내리는 숱한 의미와 사념의 부스러기들 성긴 응고체 잿빛 하늘 아래 몸을 움츠리며 떠오르는 형상 하나, 눈을 들어 허공을 보며 그리움을 띄워보낸다.